지난 시간에는 프랑스의 작곡가인 조스캥 데 프레의 음악과 16세기의 종교개혁이 교회 음악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16세기 루터 교회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가 선행을 한 사람을 보상하고, 죄를 범한 사람을 벌하는 데 있지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루터는 종교적인 권위는 오로지 성경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이나 의식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성경보다 전통과 관습을 중요시한 가톨릭 교회에서 상당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당시에 가톨릭 교회는 죄를 가볍게 만든다는 면죄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선행의 공적을 파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죄에 대한 벌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루터는 구원은 행위가 아닌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성서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517년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붙여 가톨릭 교회를 강력히 비난하였고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독일 귀족들과 세력을 모아서 새로운 복음주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루터 교회의 음악
이 새로운 교회는 일반 회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기 위해 예배할 때 독일어를 사용했고 가톨릭 교회음악에서 사용하던 성가와 새로 작곡한 성가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의식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했는데 어떤 의식은 번역하고 또 어떤 것은 라틴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루터 교회는 음악에 대해서도 가사를 원래의 라틴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가톨릭 음악과 성가에 새로운 독일어의 가사를 붙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성악가이자 플루트와 류트의 연주자이기도 했으며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음악의 교육적이고 도덕적인 영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회중들과 함께 성가를 불러 신앙심을 높이기 위해 회중 전체가 성가를 부르기를 바랐습니다. 루터는 루터 교회 내에서 획일적인 음악 양식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 내에서 16세기에 다양한 음악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교회들이 그의 '독일어 미사'(Deudsche Messe) 악보집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로마 미사의 양식과 조금 달랐고 미사의 고유문과 통상문들을 독일어로 된 찬미가로 대체했습니다.
1) 코랄(Choral)
루터파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형식은 회중찬송인 코랄입니다. 루터는 코랄을 통해서 회중의 참여를 북돋우려고 했습니다. 현대의 코랄은 4성부의 화성으로 된 음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코랄은 운율이 있고 박절적이며 유절적인 시에 맞춰 화성과 반주도 없이 제창으로 부르는 단순한 리듬의 선율로 구성된 음악입니다. 코랄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세속 음악이나 민요의 가사를 바꿔서 부르기도 했으며 일부는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세속 음악이나 민요의 가사를 바꾸는 것을 흔히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부르고 많은 코랄이 콘트라팍툼을 통해서 코랄로 만들어졌습니다.
2) 다성 코랄
뒤이어 루터 교회의 작곡가들은 코랄을 다성음악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단체로 노래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교회에서 성가대가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다성 코랄은 코랄 선율을 테너에 두고 그 주변에 셋 이상을 성부가 흘러가는 방식의 리트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보다 좀 더 정교해진 코랄 모테트라는 형식은 코랄을 좀 더 긴 정선율로 한 자유로운 다성음악을 구성한 것인 경우도 있고 코랄을 각각의 성부에서 모방하여 진행하기도 하는 형식입니다. 16세기 후반에 접하면서 루터파 교회 음악가들도 깔뱅파처럼 화성적인 구조를 보다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요한 선율을 가장 높은 성부로 올리고 나머지 성부들은 그 선율을 반주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1600년경까지 루터파 교회는 700편이 넘는 코랄 선율을 갖게 되었고 단순한 노래를 편곡한 것부터 복잡한 코랄 모테트까지 많은 작품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루터 교회는 빠르게 음악적인 독립성을 갖게 되었고 프레토리우스(M. Praetorius)부터 바흐(J.S. Bach)에 이르는 개신교 작곡가들의 음악적 작품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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